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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삼석 군수 자서전 "열정은 태산을..." 본문 발췌
한중산단 결실 위해 발로 뛰었다…정부는 "무안군 알아서 해라"는 답변
 
이민행 CEO 편집인 기사입력  2011/11/13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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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단을 내리고 나는 처음으로 아내에게 출마 의사를 밝혔다. “내 일생의 처음이자 마지막 모험이다. 나의 진심을 보여줄 수 있다. 정치권에 몸을 담아 헛되이 살지 않았다. 출마하겠다.” 한참 만에 아내가 입을 열었다. 한번 해보라고 했다. 다만 줄 돈은 없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 사정은 내가 더 잘 알았다. 출마하겠다는 나의 결심을 받아준 아내가 고마울 뿐이었다.》 

◈ 제1장
Ⅰ. 방황(彷徨)
  깊었다. 그리고 길었다. 나의 성장기, 청춘기의 좌절과 방황은 깊고 길었다. 헤어 나올 수 없었다. 의지와 바람은 간절했다. 하지만 알지 못할 운명의 힘이 더 강했다. 시간은 휩쓸려가고 미래는 기약이 없었다.

  나는 전남도의회 의원으로 선출직 정치인의 길을 시작했다. 36세의 젊은 나이였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다섯 번의 선거를 치렀다. 모두 승리했다.

  쉬운 승리는 아니었다. 중요 고비에서 나의 승리에는 ‘이변’이라는 수식이 붙었다. 당사자인 나마저 패배를 예상한 선거도 있었다. 막강한 힘을 가진 현역 출신 경쟁자, 공천의 열쇠를 쥔 당 지역위원장의 불공정, 본선에서 상대 당의 바람과 맞서야했다. 그럼에도 나는 승리했다.

  나의 청춘은 승리와는 거리가 멀었다. 승패를 매긴다면 패배 쪽이다. 좌절과 방황의 연속이었다. 나의 방황은 길었다. 20대 청춘을 보낼 때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넓었다. 무안에서 광주, 서울로 이어졌다. (중략) 

◈ 제2장 결단
  아내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한참을 허공만 바라봤다. 나는 묵묵히 아내의 대답을 기다렸다. 백수생활이 길어지며 가정에서 나라는 존재가 없어졌다. 딸이 태어났지만 어린이집 보낼 돈이 없었다. 집안의 경제 형편은 막바지에 와있었다.

  나는 선거 출마를 결단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하겠다’는 소명의식은 아니다. 나에게는 아내가 있었다. ‘나를 믿고 사는 아내에게 인정받겠다. 나를 선택한 것을 후회하지 않도록 해주겠다’는 일념뿐이었다. 내가 잘 할 수 있는 분야는 정치였다.

  초등학교 때 장래 희망을 조사했다. 나는 항상 ‘국회의원’이라고 써냈다. 국회의원이 뭘 하는 자리인지, 왜 내가 국회의원을 해야 하는지 명확한 이유는 없었다. 나에겐 어쩌면 정치인 DNA가 흐르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결단을 내리고 나는 처음으로 아내에게 출마 의사를 밝혔다. “내 일생의 처음이자 마지막 모험이다. 나의 진심을 보여줄 수 있다. 정치권에 몸을 담아 헛되이 살지 않았다. 출마하겠다.” 한참 만에 아내가 입을 열었다. 한번 해보라고 했다. 다만 줄 돈은 없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 사정은 내가 더 잘 알았다. 출마하겠다는 나의 결심을 받아준 아내가 고마울 뿐이었다.

  운명이었다. 선거, 정치가 나의 운명이었다. 모두가 안 된다고 했다. 패배한다고, 무모하다고 했다. 그럴 만도 했다. 나에게는 화려한 경력이나 든든한 정치적 배경이 없었다. 돈과 조직도 없었다. (중략)

◈ 제3장 열정
  2002년 7월 2일. 나는 무안군수에 첫 취임했다. 취임식에서 나는 “전남의 미래를 이끌어 갈 중심으로 무안군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다”며 “지역발전의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하여 무안군을 가장 조화롭고, 살기 좋은 고장으로 만드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또한 고칠 것은 확실히 고치고, 바꿀 것은 과감히 바꾸겠다고 선언했다.

  45세의 젊은 군수. 유권자가 나를 뽑아준 이유는 간단했다. 변화와 개혁이었다. 고칠 것은 고치고, 바꿀 것은 바꾸라는 명령이었다.

  취임 후 나에게 주어진 숙제였다. 무엇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중략) 문제는 행정이 아니라 변화였다. 유권자가 바라고, 미래의 도약을 위한 변화와 개혁을 위해 무엇을 화두로 던질 것인가가 늘 고민이었다. (중략)

 ◈ 제4장 도전
  나는 발로 뛰었다. 중국 정부를 설득했다. 중국 정부의 투자 승인을 끌어냈다. 한중국제산단은 중국정부와 기업이 무안군에 대규모 생산기지와 차이나타운을 건립하겠다는 사업이다. 사업규모가 매머드급이다. 총 1조7,600억원을 투입, 경기 분당 규모인 17.7㎢(536만평)의 면적을 개발하는 사업이다. (중략)

  중앙정부의 지원이 절실했다. 정치권의 관심과 지원이 필요했다. 대통령을 비롯 모든 정치인이 입만 열면 얘기한다. 투자와 기업 유치, 일자리 창출. 대기업 하나가 들어오면 해당 지역 정치인과 단체장은 치적 자랑에 열을 올린다. 

  막상 거대한 프로젝트가 눈앞에 나타나자 외면했다. 무안군 스스로 알아서 하라고 떠넘겼다. 잘되면 돕겠다는 말뿐이었다. 법과 제도를 이유로 들었다. 과거 중국에 대한 선입견에 사로잡혀 미래를 보지 않았다. 미래를 위한 사업이라는 점은 인정하면서 정파적 잣대를 들이댔다. 과거 정권이 시작한 사업이라는 이유로 눈을 돌렸다.

  서러웠다. 나는 가끔 가정을 해본다. 무안군이 아니라 경기도나 인천광역시 같은 광역자치단체가 이 일을 추진했다면 중앙정부나 정치권으로부터 이렇게 찬밥 대접을 받았을까.

  중앙정부 탓만 할 수 없었다. 나의 힘으로, 무안군민의 지지와 지원을 믿고 가야했다. 한걸음 한걸음이 가시밭길이었다. 내가 가진 모든 정성과 열정과 노력을 쏟아야 전진할 수 있었다. 위기가 있었다. 사업을 포기해야할 고비가 있었다. 포기할 수 없었다. 좌절할 수 없었다. 

◈나의 사랑 나의 아내
  Before(이전)와 After(이후). 사람이 하나의 계기로 확 달라졌을 때 그 비교를 한다. 내 인생의 Before(이전)와 After(이후)를 구분하는 기준선은 결혼이다.

  결혼을 계기로 내 인생은 달라졌다. 결혼으로 생활이 안정되면서 모든 면에서 탄력을 받았다. ‘방황의 시기’가 끝나고 ‘열정과 도전의 시기’가 시작됐다. (중략)

  내가 아내를 처음 만난 건 1989년 10월이다. 보좌관 시절이다. 국정감사가 끝난 후 후배의 소개로 만났다. 아내는 그때 승주에서 교편을 잡고 있었다. 첫 만남에서 서로 끌렸다. 무엇이, 어떻게 끌렸느냐면 딱히 할 말이 없다. 평생을 함께 할 수 있다는 믿음 같은 것이었다.

  만난 지 4개월 만에 결혼식을 올렸다. 나는 33살, 아내는 28살이었다. 아내는 근무학교를 서울로 옮겼다. 당시 부부 공무원은 전근을 통해 한 지역에서 근무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서울 상도동 성대시장 골목에 전셋집을 얻어 신방을 차렸다. 일곱 평짜리 방이었다. (중략)

  아내는 우리 가정의 버팀목이다. 나는 결혼 후 가정의 경제생활을 책임지지 못했다. 아내가 가정을 꾸리고 책임졌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단체장은 개인생활이 없다. 평일은 말할 것도 없고 주말에도 마찬가지다. 해외나 서울로 출장을 자주 간다. 점심은 상관없지만 저녁 자리의 비용은 만만치 않다. 규정상 일정액수 이상 사용은 소명해야한다. 나는 자주 내 개인카드를 쓴다. 매 달 보수를 받아봤자 남는 게 별로 없다. 결국, 집에 보태줄 게 없다.

  아내는 가정뿐 아니라 정치적으로 버팀목이다. 절대적 후원자다. 그리고 제일 무서운 스승이기도 하다. 나의 잘못에 대해 가치 없이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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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삼석 군수 걸어온 길
▲서삼석(徐參錫 Seo Sam-Seok) ▲1958년 8월 3일생 ▲출생지 전라남도 무안군 현경면 평산리
⊙학력
▲1974년 무안 현경중학교 졸업 ▲1979년 조선대학교 부속고등학교 졸업 ▲1988년 조선대학교 법정대학 행정학과 졸업 ▲2000년 전남대학교 행정학 석사 ▲2003년 전남대학교 대학원 박사(NGO협동과정) 수료
⊙경력
▲1988~1994년 13, 14대 국회의원 보좌관 ▲1995~2002년 전라남도 5, 6대 도의원(☞5.18특별위원회 위원 ☞재정계획심의위원회 위원 ☞농림수산위원회 위원 ☞기획재정위원회 위원장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 ▲1994~현재 무안군장애인협회 후원회장 ▲2002~현재 민선 3,4,5기 무안군수
⊙수상
▲제2회 풀뿌리 민주대상(광역의원/2001) ▲제4회 풀뿌리 민주대상(우수단체장상/2003) ▲민원행정 종합평가 우수기관(행정자치부/2006) ▲지방재정분석 평가 A등급 (행정자치부/2006~07) ▲지방자치대상(한국언론인 포럼/2006, 2007, 2008) ▲신활력사업 평가 우수기관(행정자치부/2006, 2007, 2008) ▲아이돌보미 지원사업 평가 우수기관(보건복지가족부/2009) ▲광역클러스터사업 인센티브 평가 우수(농림수산식품부/2009) ▲전남투자유치대상 최우수상(전라남도/2009) ▲농촌활력증진사업 최우수 지자체 선정(농림식품부/2009) ▲지방자치경영대상-경제활성화부문-대상 수상(아시아경제신문/2010) ▲광역클러스터사업 인센티브평가 우수(농림수산식품부/2010) ▲국가브랜드 대상 수상 양파부문(이코노미스트/2010) ▲노인복지 증진 기여 공로패(대한노인회/2011)

/정리=이민행 CEO 편집인 (99호 11월 15일자 12면 특집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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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1/11/13 [12:09]  최종편집: ⓒ ror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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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ㅎㅎㅎ 2011/11/20 [00:21] 수정 | 삭제
  •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액끼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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