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 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껴 / 새 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로 이어지는 ‘임을 위한 행진곡’은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기린 노래로써 백기완(당시 옥고)의 시 ‘묏비나리’(1980. 12)에서 가사를 따와 광주지역의 문화운동가인 김종률씨가 작곡했다.

  이 노래는 광주 민주화운동 때 시민군 대변인으로 활동하다가 전남 도청에서 전사한 윤상원과 1979년 겨울 노동현장에서 일하다 숨진 박기순의 영혼결혼식을 내용으로 하는 노래 굿 ‘넋풀이’에서 영혼 결혼을 하는 두 남녀의 영혼이 부르는 노래로 발표됐다.

  그 뒤 1982년에 제작된 음반 ‘넋풀이-빛의 결혼식’에 수록되면서 일반에 널리 알려지게 됐다. 이후 민주화운동은 물론 각종 시민사회단체, 노동단체, 학생운동단체 등의 집회 때에 민중의례의 하나로써 널리 애창되었다. 오늘날의 대중 집회에서도 흔히 불리는 이 노래는 중국어 등 외국어로도 번역되어 불리고 있다.

  지난 18일은 광주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이었다. 광주 민중항쟁 기념일로도 불리는 이 날은 1980년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광주시민과 전라도민이 중심이 돼서 조속한 민주주의 정부의 수립을 촉구하고, 전두환 보안사령관과 12·12 군사 쿠데타 및 5·17 비상계엄을 주도한 신군부 세력의 퇴진과 계엄령 철폐 등을 요구하며 전개됐던 민주화운동을 기리는 날이다.

  당시 전두환을 비롯한 신군부세력은 공수부대 등의 계엄군을 동원해 잔인하고도 무력적인 방법으로 민주화운동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시민과 학생 191명이 피살되고 852명이 부상당했다. 당시를 회고하는 이 지역 시민들의 증언에 의하면 사상자와 실종자 등을 모두 합치면 인명피해는 2천명이 훨씬 넘는다는 주장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올해로 30주년을 맞이하여 청장년이 된 5·18 기념식은 따라서 여느 때보다도 엄숙하고도 숙연하게 그 행사가 치러졌어야 마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보훈처가 주관한 기념식에 해마다 하얀 소복을 입고 한쪽 자리를 지켰던 5·18 희생자 유족들은 끝내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이날따라 유독 처량하게 내리는 비를 마다하지 않으며 5·18 민주묘지에서 500여m 떨어진 망월동 옛 5·18 묘역으로 운집했으며, 400여명 정도의 인파는 정부의 주관행사와는 별도로 개최되는 광주지역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5·18민중항쟁기념행사위원회 주관의 기념식을 열고 있었다.

  결국 정운찬 국무총리 등 정부 인사와 여야 정치인, 시민 등 2천여명이 참석한 정부 주관의 기념식장에는 700여석의 빈자리가 쓸쓸히 추적거리는 비를 맞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 5·18 기념식의 파행은 예견된 일이었다. 보훈처는 5·18 30주년 행사를 2개월 앞두고 돌연 ‘임을 위한 행진곡’을 공식 추모곡에서 제외했기 때문이다.
 
  그 동안 기념식에서 의례적으로 불러온 ‘임을 위한 행진곡’이 이번 행사에서 제외된 것은 이 노래 가사 중에 “새 날이 올 때 까지 …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는 대목이 정권 교체를 주장하는 것으로 풀이될 수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다. 
 
  이에 5·18 당시 첫 번째 희생자인 故 김경철 씨의 어머니 임근단 씨(79)는 “‘임을 위한 행진곡’이야말로 유족의 한을 대변할 수 있는 노래”라며, “30년간 한을 담아 불러온 노래를 못 부르게 하는 의도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또한 김무성 한나라당 원내대표도 “나도 1980년대 초부터 민주화운동을 하면서 시위 현장에서 매일 불렀던 노래”라며, “엄숙해야 할 기념식장에서 노래 한 곡 부르냐, 안 부르냐의 문제를 갖고 분위기를 망친 미숙한 조정 능력에 대해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더욱이 보훈처는 이날 정운찬 총리가 퇴장할 때를 위해 경기민요 ‘방아타령’을 연주하려고 준비했다가 당일 기념식장 분위기가 어수선하게 돌아가자 민중가요인 ‘마른 잎 다시 살아나’로 긴급 대체했다고 한다.  일부 가사에 정녕 문제가 있다면 유족 등 관련 시민사회단체와 사전에 충분히 조율해 문제를 보완하거나 별도의 방안을 강구했어야 한다. 소통부재로 두 동강이 된 기념식은 5·18 영령께 큰 누를 끼칠 뿐이다.

2010년 5월 24일
초당대학교 박일훈 경찰행정학과 교수(일본 메이지(明治)대학 법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