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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령고蘆嶺鼓 - 이릉대전夷陵大戰
CEO 편집인 이민행
 
CEO 편집인 이민행 기사입력  2013/09/11 [19:37]
 
 삼국지의 3대 대전 중의 하나인 이릉대전(夷陵大戰)은 삶을 영위하며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안겨준다.

 이릉대전(夷陵大戰)이란, 촉한 황제 유비가 제갈량 등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의형제 관우와 장비의 원수를 갚겠다고 형주 수복에 나선 전투를 말하며, 전투의 판가름이 효정(猇亭)에서 결판나는 계기로 효정대전(猇亭大戰)이라고도 한다.

 손권(孫權)은 유비가 수십만 대군을 이끌고 침공하자 신하들의 극심한 반대를 불구하고 육손(陸遜)을 등용하여 이릉대전에 대한 전권을 위임한다. 육손은 여러 계책을 쓰며 유비 진영에 화공(火攻)과 잇단 공격을 퍼붓고 촉군을 괴멸시켰다.

 유비는 백제성까지 물러나는 참담한 수모를 겪었으며 수많은 문관과 무관 및 수십만명의 군사를 잃고, 결국 사망하는 계기를 스스로 만들었으며, 이 전투로 인해 촉한이 멸망하게 된다.

◈동함평산단, '法'도 손 들어 주었다  

 함평군이 추진하는 ‘동함평산업단지’의 그간의 아픔을 들여다보니 ‘이릉대전’이 주는 교훈을 다시 새기게 한다. 동함평산단 조성과정에서 600명의 대군을 앞세우고 3선을 했던 전임 군수까지 나서며 감사원 감사 청구와 언론플레이도 모자라 군수를 소송하고 언론사를 소송하고, 한술 더떠 전직 군의회 의장이 나서 군청 게시판과 언론사에 게재하는 등 11개월 동안 여론몰이와 중상모략이 판을 쳤다.

 특히 검찰이 감사원 의뢰로 군수 등에 대한 수사에 착수하자 언론플레이와 여론몰이는 극에 달했으나, 지난 9일 검찰에서 혐의가 없다고 수사를 종결하자 그들은 입을 닫고 있다. 뭐라고 한마디하도 해야 될 텐데 말이다.

 황제 신분의 유비는 불필요한 아집(我執)으로 인해 목숨을 잃고 나라를 잃었듯이 이석형 군수는 함평군민이 3선 군수라는 중책을 맡겼던 뜻을 받들고, 3선 군수 아래서 영화를 누렸던 사람들도 군민이 무서움을 알아야 한다. ‘순리를 어기면 하늘은 무서운 벌을 내린다’는 것을 이릉대전이 던져주는 지혜를 통해 이제라도 각심하며 큰 정치의 꿈을 키우고 화합과 소통의 대열에 나서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명심보감(성심편)에 “無義錢財湯潑雪(무의전재탕발설) 당來田地水推沙(당‘人+黨’래전지수퇴사)? 若將狡譎爲生計(약장교휼위생계) 恰似朝開暮落花(흡사조개모락화)”라고 했다. 즉 “의롭지 않은 돈과 재물은 끓는 물에 녹는 눈과 같고, 갑자기 들어온 전답은 물이 모래를 밀어 덮는 것 같다. 만일 간사한 꾀를 써서 살려고 하면, 아침에 피었다 저녁에 지는 꽃과 같다.”라는 뜻이다.

◈안이한 무안군 행정

 지난해 보궐선거에서 김철주 무안군수는 당시 ‘무안거점고등학교’ 설립을 공약으로 내걸고 지금 사업이 진행 중이다. 공약(公約)이 공약(空約)이 되지 않아 반기는 바이다.

 그러나 군민들은 보상비 관련 여론이 그리 썩 좋지 못하다. 거점고 부지 보상비 51억원 가운데 한 사람이 36억원을 받은데 대한 충분한 설명이 뒤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무안군수 관사 아파트 주변 담장에 가시철조망이 설치되어 있어 노약자·어린이·학생들이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고 지적해도 지금껏 아무 대책이 없다. 내가 다니는 길이 아니라 사고가 나던 말든 상관할 바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할 말이 없겠지만 말이다.

 해제면에 도로변에 설치된 대형 입간판이 ‘기업도시는 무안의 희망입니다!’라고 최근까지 버젓이 서 있는 것을 지적하자 군은 최근 ‘군민위한 감동행정 잘 사는 행복무안’으로 교체하면서 영산강을 배경으로 삼고 아래에 ‘몽탄면 이산리’라고 기재했다. 해제면에도 소개할 것이 많을 것인데 굳이 영산강을 소개하고 있는지 씁쓸하다. 해제면도 무안군이니 탓할 바는 아니지만.

 孟子(離婁章句上)에 “我愛人而人不親我(아애인이인불친아) 則反求諸己(즉반구제기) 恐我之仁(공아지인) 未至也(미지야)”라고 했다. “내가 사람을 사랑하되 사람이 나를 친하지 아니하면 곧 돌이켜 내 몸에서 구하여 나의 인이 지극하지 못한가를 두려워하라.”는 뜻이다.

 정치든, 사업이든, 직장생활이든 세상을 살며 얻지 못하는 것이 있다면 자만에 떨지 말고 먼저 자신을 돌이켜 보는 지혜를 구하는 노력을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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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國志(삼국지) 3대 대전(전투)
官渡大戰(관도대전), 赤壁大戰(적벽대전), 夷陵大戰(이릉대전)
 
官渡戰鬪(관도대전) : 관도대전은 조조 魏(위), 유비 蜀(촉), 손권 吳(오) 삼국시대를 여는 첫 큰 전투로 조조가 서기 200년 관도(官渡/현 하남성 중모현)에 진을 치고 원소의 대군을 격파했다.

赤壁之戰(적벽대전) : 조조가 서기 208년 100만 대군을 이끌고 적벽에 진을 치고 吳(오) 손권(孫權)을 정벌하려다 蜀(촉) 제갈공명과 吳(오) 주유의 계략과 오·촉 두 나라 연합전선 책략에 걸려 대패한 전투를 말한다.

夷陵大戰(이릉대전) : 효亭戰鬪(효정전투)라고도 한다. 유비가 서기 221년 의형제인 관우와 장비의 원수를 갚고 형주를 수복하기 위해 吳(오) 손권을 침공했으나 육손의 화공(火攻) 계략에 말려 대패한 전투를 말한다. 이 전투로 인해 유비는 223년 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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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3/09/11 [19:37]  최종편집: ⓒ ror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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