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부터 정치적으로 바람 잘 낮이 없는 형국이다. 목포시는 선거개입 논란과 최근에는 공사발주 과정에서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사정당국의 내사설이 흘러나오고 있고, 신안군도 선거법위반혐의로 친인척이 형을 받았다.
오늘은 論語(논어) 三(삼)이라는 숫자로 天地人(천지인)의 이치를 새겨 보고자 한다. 天이란 다스림이요, 地란 받들음이요, 人이란 살찌움이다. 天地人 삼박자 가운데 한 틀만 깨져도 우주는 요동을 치는 게 자연의 이치이다. 곧 인간세의 이치이기도 하는 법이다.
일찍이 공자께서는 가까이 할 벗과 멀리 할 벗, 이로운 즐거움과 해로운 즐거움에 대해서 경고하셨다.
論語 季氏篇(논어 계씨편)에 “익자삼우(益者三友)오 손자삼우(損者三友)니 우직(友直)하며 우량(友諒)하며 우다문(友多聞)하면 익의(益矣)오, 우편벽(友便僻)하고 우선유(友善柔)하며 우편녕(友便아첨녕?)이면 손의(損矣)니라.” 하였다. 즉 “유익한 벗 셋이 있고 해로운 벗 셋이 있는데, 정직 한사람을 벗하고, 성실한 사람을 벗하고, 견문이 많은 박학다식한 사람을 벗하면 유익하고, 겉치레만 좋아하는 사람과 벗하며, 아첨 잘 하는 사람과 벗하면 해롭다.”는 뜻이다.
무릇 정치지도자 가운데 주위에 측근을 잘못 천거해 자신과 정치를 망친 사례를 고금의 역사를 통해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작금에 현실에도 역사의 진리를 무시하고 아첨꾼들에게 휘둘러 쌓여 권위의 즐거움에 빠져 들며 향유의 즐거움을 누리는 모습을 볼 때 안타깝기 이전에 그들의 훗날이 더 걱정이 앞설 따름이다.
무릇 정치인이라면 각양각층의 민중에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마음을 열어야 국정이던 군정이던 올바른 민의가 반영되는 정책을 펼칠 수 있다. 상대성 있는 곳은 회피하고 자기들만의 잔치를 열고 우쭐대며 향락을 일삼고 있다면 제대로 된 민의는 어디서 들을 수 있겠는가? 소통이 단절되니 만남이 두절되어 불신의 고리가 더욱 엉겨 붙어 자기 패망의 길로 스스로 접어드는 것이다.
論語 述而篇(논어 술이편)에 “三人行(삼인행)에 必有我師焉(필유아사언)이니 擇其善者而從之(택기선자이종지)하고 其不善者而改之(기불선자이개지)하라”고 하셨다. 즉 “세 사람이 길을 가면, 반드시 그 가운데 스승이 있으니. 좋은 점은 가리어 따를 수 있고, 좋지 않은 점은 고칠 수 있기 때문이다.”라는 뜻이다.
늦은 때가 제일 빠른 때라 하였던가? 이제라도 모두 우리 스승이 자신의 어디 옆에 있는지 살펴보고 돌아보며 민중정치가 무엇인지 한 번쯤 상기하며 지금이라도 스승을 모셔보자. 자만에 빠진 구렁텅이에서 벗어나서 말이다. 허구로 이끈 세상은 결국은 허망하게 무너진다는 진리를 바로 새기면서.
세상이 시끄러우니 한마디 더하자. 論語 學而篇(논어 학이편)에 曾子(증자)는 “吾日三省吾身(오일삼성오신)하노니 爲人謀而不忠乎(위인모이불충호)아 與朋友交而不信乎(여붕우교이불신호)아, 傳不習乎(전불습호)이니라.”하였다. 즉 “나는 날마다 하루 세 번 반성하노니, 타인을 위해 도모함에 있어 충성을 다하였던가, 벗과 더불어 교류함에 있어 믿음을 다하였는가, 배운 것을 익히지 아니하였는가.”라는 뜻이다.
위정자들이여 깊이 또 깊이 새겨 刻苦(각고)의 심정으로 잘못한 점에 대해서는 정중히 사과할 줄 아는 책임 있는 정치인으로 換骨奪胎(환골탈태)하여 책임정치를 구현하기를 염원하는 바이다.
본시
“가난이란, 선비에게는 늘 있는 일과”이며, “죽음이란, 자연의 이치에 순응하는 것”이거늘. 늘 마지막을 상기하며 한달에 한번이라도 우리 모두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의 여유를 가져 봄은 어떤가.
(2010년 1월 2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