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 ‘설’에는 민족정기를 회복해 보자
아스콘으로부터 국민 건강을 보호 받자
계묘년이 밝아온다. 늘 하는 말이지만 올해는 나라도 사회도 이웃도 가정도 진정 날마다 새로워지기를 기원해본다.
大學에 殷(은)나라 재상 伊尹(이윤)이 써놓고 실천했다던 ‘苟日新 日日新 又日新(구일신 일일신 우일신)’이라는 대목이 있다. “진실로 새롭고, 날마다 새롭고, 새로워야 한다”는 말이다.
설날이 며칠 앞으로 다가왔다. 어릴 적에 설이 다가오면 불렀던 동요가 떠오른다 “까치 까지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곱고 고운 댕기도 내가 드리고 새로 사온 신발도 내가 신어요 / 우리 언니 저고리 노란 저고리 우리 동생 저고리 색동 저고리 아버지와 어머니 호사내시고 우리들의 절 받기 좋아하세요”라고. ‘절 받기 좋아하셨다’고.
그렇다. 설날이 그토록 기다려졌었지만 당시에는 휴일이 아니라 학교에 가야만 했다. 일제강점기 시대 문화 말살 정책의 일환으로 서양력 1월 1일을 ‘신정(新正)’이라고 하고 민족의 명절인 ‘설’을 ‘구정(舊正)’이라 하여 민족정기를 빼앗았다.
그러나 해방이 되고 광복을 맞았으나 서양 문화에 젖은 정권이 들어서며 민족정기를 회복하지 못하며 지금도 ‘구정(舊正)’이라고 부르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다. 씁쓸할 따름이다.
시인 김남조 詩 ‘설날 아침에’ “닭이 울고 날이 새고 설날 아침이다 새해 새아침 아침이라 그런지 까치도 한두 마리 잊지 않고 찾아와 대추나무 위에서 운다. 까치야 까치야 뭣 하러 왔냐 때때옷도 색동저고리도 없는 이 마을에 이제 우리 집에는 너를 반겨줄 고사리 손도 없고 너를 맞아 재롱 피울 강아지도 없단다”라고 했다.
서양문화가 민족문화를 잠식하고 급기야 ‘새마을 운동’이라 하여 설날이며 어른들을 찾아뵙고 절을 올리던 ‘세배 문화’도 새마을운동이 한창일 때 구습(舊習)이라 하여 사라져버렸다. ‘때때옷’도 ‘색동저고리’도 ‘세배(歲拜)’도 없는 마을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이제 설날을 찾았으나 생활문화와 서양 문명이 발목을 잡아 버렸다. 시골은 점점 사라지고 고향 개념도 따라서 사라져 고향을 찾는 발걸음도 사라진지 오래고, 조상의 묘를 찾아 참배하는 것도 우상숭배(偶像崇拜)라는 개념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러나 잊지 말자. 예전에 할아버지 아버지 고향이었고, 그분들이 계셨기에 우리가 있다는 것을.
논어에 “愼終追遠 民德歸厚矣(신종추원 민덕귀후의)”라고 했다. ‘삶에 있어 마침을 신중히 하고, 앞선 조상까지 추모하면, 백성의 덕이 후하게 된다’는 말이다. 조상을 욕되게 하는 것이 진짜 마귀에 씌운 것임을 명심하자.
◈아스팔트 도로 아스콘 분진
시대가 바뀌며 신작로(新作路)라고 불렸던 도로가 시멘트 포장이 되고 나아가 아스콘 포장까지 왔다.
고속도로는 말할 것 없거니와 국도, 지방도, 군도 그리고 마을 골목길까지 아스팔트로 말끔히 단장되어 있다.
생활의 편익을 제공하는 뒷면에는 환경오염의 주범이 도사리고 있다. 도로 주행 시 자동차 유리창에 까만 아스콘 분진이 날아와 달라붙는다. 유리창 닦기를 켜면 양면에 시커멓게 쌓인다. 분진이 미세먼지가 되어 우리들의 호흡기로 빨려 들어온다.
고속도로 중간 중간에 설치된 다리 교각에는 엄청난 크기의 수통이 설치되어 있다. 비가 내리면 이 수통을 통해 자동차 타이어에 발생된 분진이 시커멓게 쏟아져 나오며 아무런 여과장치 없이 논밭으로 하천으로 흘러 들어온다.
국도 등 일반도로에도 비가 쏟아지면 시커먼 아스콘 분진이 그대로 논밭으로 유입되고, 하천의 물을 양수기로 품어 올려 논밭에 관수한다. 환경오염의 주범 아스콘으로 범벅이 된 산과 들과 하천이 오염창고로 변신해도 어느 기관 하나 이를 예방하는 제도적 장치가 하나도 없다.
아스팔트가 우리가 생각지 못했던 곳에서 환경오염의 주범이 되어 도로 주변에서 생산된 작물을 음식으로 모른 채 먹고 있는 것이다.
맹자 양혜왕편에 “百姓之不見保 爲不用恩焉(백성지불견보 위불용은언), 백성이 보호받지 못하는 것은 은혜를 베풀지 않았기 때문이다”고 했다. 국민이 있어 나라가 있는 것이며, 나라는 당연히 국민의 생명을 지켜야 한다. 지금이라도 국민이 건강을 보호 받을 수 있게 정부와 국회 그리고 지방자치단체는 고민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