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조선, '신화'가 아닌 '실체국가'
반민족 사학자 이병도, 식민사학 주도
한일합방 후 역사서 51종 20만권 소각
"우리는 아직 광복을 맞지 않았다"
◈겨레의 탄생 개천절(開天節)
10월 3일은 개천절((開天節))이라고 한다. 무심코 지나치는 개천절은 7천만 겨레의 생일이다. 10월 3일은 나라의 창건일이자 한민족이 태어난 각별한 날인 것이다.
미국이 건국된 7월 4일 독립기념일 행사처럼 온 겨레가 경축하고 성대하게 기념해야 할 역사적인 날이다. 그런데 이 소중한 날의 자세한 내력과 각별한 의미를 한국 사람과 자신은 얼마나 알고 있는 것일까?
한국인들은 오늘의 군사정변으로 인한 성공신화에 깔려 겨레의 유구한 역사와 찬란한 문화의식이 잠재돼 있음으로 알지 못하고 있다. 이제 한국인은 자신을 재발견해야 할 때를 맞이하고 있다.
지난 80년대 초에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고대 한민족의 족보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기존 역사서인 《삼국유사》, 《제왕운기》등에서는 불과 한두 페이지로 약술된 줄거리와 해석불가능의 신화의 코드들이 새로운 역사서 공개로 풀리기 시작한 것이다.
중동문명의 기원을 명쾌하게 해명해줬던 이집트의 ‘로제타석’처럼 《환단고기(桓檀古記)》는 한국인이 동방에 터 잡은 내력과 한국인의 가장 오래된 옛 이야기들을 들려주며 수천 년 동안 잠들어 있던 우리의 과거를 깨우고 있다.
◈환단고기, 세상에 드러나
환단고기(桓檀古記)란, 1911년에 삼성기(三聖紀), 단군세기(檀君世紀), 북부여기(北夫餘紀), 태백일사(太白逸史) 등 4권의 책을 일제 강점기 초기에 평안북도 출신 계연수(桂延壽)가 하나로 묶은 책을 말한다.
편저자인 계연수 씨는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1920년에 사망했다. 이 때 계연수 씨는 경신년(1980년)에 ‘환단고기’를 세상에 공개하라는 말을 제자인 ‘이유립’에게 남겼다고 한다.
이후 환단고기는 제자 이유립이 1979년 수십 부를 영인 발행했고, 1982년 일본인 가시마(鹿島昇)가 일역(日譯)하고 원문을 게재한 것이 계기가 되어 세간에 본격적으로 소개되기 시작했다,
단군조선(壇君朝鮮)은 신화(神話)가 아닌 실체 국가이다. BC 770~BC 233년 사이인 542년 동안 노, 위, 정, 진(秦), 조, 체, 연, 송, 제, 진(陳), 초, 진(晉)등 12제후국들이 서로 왕이라 칭하고, 패권싸움을 하게 되는데 이 시기를 이름 하여 ‘춘추전국시대’라 한다.
진(秦)나라의 진씨왕 정(政)은 13세에 왕위에 올라, 중국대륙을 통일한 때가 34세였고, 천하를 통일한지 16년인 49세에 죽었다. 진씨왕은 BC 221년 대륙을 통일하고, 승상 이사의 말을 듣고 세상의 모든 역사 서적을 불태우고, 학자 460명을 생매장시켜 죽이는 ‘분서갱유’를 자행했다. 이때 우리 단군조선의 역사서가 모두 불탔다.
◈동아시아 문명의 여명 '환국(桓國)'
지금으로부터 약 9천 년 전, 우리의 오랜 선조들은 저 시베리아의 광활한 평원에서 동해의 바닷길이 열린 이 한반도에 이르는 동서 2만리의 넓은 땅에 살고 있었다. 그 땅에 처음 자리 잡고 대대로 살아온 원주인이다. 그들은 먼 곳에서도 서로 소통하며 12개의 거대한 부족나라 연맹을 이루며 화목하게 살았다. 하늘산(天山 지금의 텐산)과 하늘바다(天海 시베리아 바이칼호)가 있는 그 땅의 나라 이름이 ‘환국(桓國)’이다.
삼국유사에서 “옛적에 환국이 있었다(昔有桓國)”라고 했던 바로 그 나라이다. 지금도 우리말에 남아있는 ‘환(桓 나무목(木 동방)+뻗힐긍(亘 동이 트는 모습))’은 동녘이 틀 때 ‘하늘로부터의 광명(自天光明)’을 의미한다.
◈태종 이방원, 단군 기록 불살라
해모수가 세운 북부여 역사가 선비족 ‘모용외 난’으로 소실되고, 단군조선 상고부터 고구려 초기까지의 역사 기록인 유기(留記) 100권은 위(魏)나라 ‘관구검 난’으로 소실되었다.
고구려·신라·백제 3국을 기록한 고흥 박사가 지은 신집(新集)이란 역사서와, 신라 진흥왕 때 거칠부가 지은 신라고사(新羅故事)가 소실되었고, 고려 때 쓴 삼한고기(三韓故記), 해동고기(海東古記), 삼국사(三國史) 등의 역사서가 없어지고, 신라의 것이 겨우 전하여 조선 시대 서운관에 보관되었었는데, 1592년부터의 7년간의 임진왜란으로 모두 불타버렸다.
조선 태종 이방원은 명(明)나라에 사대하기 위하여 자신의 조상이라 할 수 있는 단군조선의 기록인 신지비사(神誌秘詞), 해동비록(海東秘錄) 등을 불살랐다.
◈한일합방 후 역사서 51종 20만권 소각
1910년 8월 한·일 합방을 한 일본은 그해 11월부터 이듬해인 1911년 12월까지 약 1년 동안 경찰과 헌병을 총 동원하여 전국각지에서 강탈한 역사서 51종 20만권을 불사르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것도 모자라 일본은 총독부 직속으로 ‘조선사편수회’와 ‘조선고서간행회’를 만들어, 삼국사기, 삼국유사, 고려사, 조선왕조실록 등의 역사서를 제 마음대로 고쳐서 교열(校閱 문서의 잘못된 곳을 교정하여 검열함)하여 마구 찍어냈다.
역사내용이 자신들에게 불리하거나, 열등감을 줄 수 있는 내용은 후세인이 알 수 없게 조작, 날조, 왜곡을 했다.
◈홍산문화, 황하문명보다 1500년 앞서
세계 4대 문명 발상지로 황하, 인더스,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라고 한다. 황하 문명이 주변 아시아의 모든 문명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배웠고 그렇게 알고 있으나, 이 홍산문화의 유물 발굴로 인하여, 우리 환웅천황의 배달국(培達國)과 단군조선이 있었던 요하( 고구려 때만 하더라도 구려하 혹은 압록수라고 부르던 지금의 요하), 동이족의 문화인 홍산문화가 황하문명 즉 앙소문화보다 1,500년이 앞선 문화임이 입증되었다.
◈반민족 사학자 이병도, 식민사학 주도
일본 놈들이 우리민족을 멸망시키기 위하여 2096년의 찬란한, 실존했던 단군조선을 신화로 둔갑시켜 매장시켰다. 특히 일본인 식민사학자 이마니시류(今西龍 1875~1932)가 식민사학을 주도했고, 그의 제자였던, 반민족 사학자 이병도(李丙燾/이완용 조카)와 지금 이 시간에도 한국의 대학 강단에서 식민사학을 가르치고 있는 민족반역자들이 공범자들이다.
◈단군조선, '신화'가 아닌 '실체국가'
단군조선은 신화가 아닌 실제 국가이다. 단군왕검은 신묘년인 BC 2370년 5월 2일 인시( 새벽 3시~5시 사이를 말함)에 태어난다. 아버지는 분명히 배달국의 18대 천황인 거불단 환웅이었다. 24년 동안 비왕으로 있다가, 무진년인 BC 2333년에 아사달(이두어:새로운 땅 혹은 새로운 산이란 뜻)에 도읍을 정하고 국호를 조선(朝鮮)이라 한다.
◈설날 10월…유태인 설날도 10월
제5대 구을단군 때인 BC 2099년에 처음으로 ‘갑자’를 사용하여 책력을 만들고, 10월을 ‘상달’이라 하여 한해의 시작 즉, 설날로 했다는 기록이다. 현재 유태인들의 설날이 10월 달인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 동이한민족의 문화가 유태인들에게 전파 보급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국조 단군, 조선 건국 후 삼한 열어
신시배달 건국 후 1500년이 흐른 뒤, 마지막 환웅과 웅씨 왕녀의 아들이신 단군께서 분열된 동방 구환 겨레를 재결집하시고 무진년(BCE 2,333년) 상월(10월) 3일 신교정신의 근본으로 돌아가 태백산 옛 단목터에서 하늘에 제사를 지내신 뒤 새 나라를 개창하고 국호를 조선(朝鮮)이라고 하셨다.
또한 나라를 셋으로 나눠 삼한으로 하시니 한(韓)은 천지의 광명 정신인 환단을 계승한 역사의 주인 태일(太一)이다. 고조선의 이러한 삼한제도는 고조선 이후 우리가 상식으로 알고 있는 마한, 진한, 변한의 남삼한으로까지 이어진다.
고조선은 고유의 신교정신만으로 지탱된 환인, 환웅, 단군 삼성조시대의 마지막 국가였다. 우리 문화사의 상징적 존재이신 국조 단군은 하늘을 우러러 땅을 굽어 한 점 부끄럼 없는 백성으로 살려 했던 이 땅의 한민족이었다.
1,300년 전, 외세와 결탁한 신라가 망국멸족의 삼국병합을 한 이래로 국본인 삼신 신교문화는 이 강토에서 멸절되고 단군 말살에 앞장서온 고려 오백년과 조선 오백년 사대주의자와 개항 이래의 외래종교, 일제강점기에서 비롯된 식민사관 정신병자들의 병폐, 해독은 날로 심해지고 기승을 부리고 있다.
우리는 아직 광복을 맞지 않았다. 진정한 광복의 정신으로 10월의 의미를 되새기자. 우리 한민족이 제대로 된 광복을 맞기 위해서, 우리 정신으로 올바른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 진정한 한류로 지구촌 풍류를 일으키기 위해서 말이다.
/정리=이민행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