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
![]() |
![]() |
|
|
|
![]() |
| 노령고 > |
|
|||||||
| 노령고蘆嶺鼓-慘·慙·懺 '아비규환 절규하는데' | ||||
|
||||
|
"떠나고 싶어 떠난 영혼도 아닌데" 羞惡之心(수오지심) 부끄러움을 알자
지난 2022년 11월 사설 노령고(蘆嶺鼓)에 〈慘·慙·懺 ‘아비규환 절규하는데’〉라는 주제로 “참(참혹할慘), 참(부끄러울慙), 참(뉘우칠懺)이란 글자가 서럽게 가슴을 치며 자꾸 스친다”고 썼다. 2024년이 저무는 이틀을 앞두고 무안국제공항에서 여객기 추락 사고로 승객 181명 중 179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알려지고 있다. 탄핵 심판대에 선 대한민국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 慘死(참사)라는 慘變(참변) 일어나자 ‘事故(사고)가 났다’고 했다. 만약, 지금 대통령 직무를 수행하고 있다면 무안국제공항 여객기 추락사건에 대해 ‘뭐라고 말했을까’라고 생각해보니 또 ‘事故(사고)가 났다’고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맞다. 윤석열 정부들어 事故(사고)로 死苦(사고)가 많이 났다. 이태원 참변으로 159명 산화, 대전 화재사건, 청주시 오송 지하도 14명 사망, 해병대 채상병 사망 사건, 이재명 대표 피습사건, 제12보병사단 훈련병 사망 사건, 제51보병사단 일병 사망 사건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분들이 억울하게 이승을 달리했다. 이승만 정부 시절 서울 종암초등학교 3학년 임동성 학생과 수성초등학교 6학년 전한승 학생을 비롯한 산화하신 186분. 박정희 정부 시절 1970년 서울 마포 와우 아파트 붕괴 33분, 1971년 대연각호텔 화재 168분, 1974년 대왕코네 화재 88분, 1977년 이리폭발사고 59분. 전두환 군부 독재 당시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으로 사망하신 167분과 대한항공 보잉707 폭발사고 93분. 김영삼 정부 시절 1993년 10월 10일 전라북도 부안군 위도 서해훼리호 침몰 사건으로 희생하신 292분, 서울시 서초구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로 참변 당하신 502분, 1994년 10월 21일 성수대교 붕괴로 참변 당하신 32분, 1995년 4월 대구 도시가스 폭발사고 101분. 이명박 정부 시절 2003년 2월 18일 대구 지하철 화재 사고로 참변 당하신 192분과 박근혜 정부 시절 2014년 4월 16일 전남 진도군 해역에서 일어난 세월호 침몰 사건으로 희생하신 어린 학생 등 304분. 慘史(참사), 슬프고 슬픈 비참(悲慘)한 역사에 산다는 게 고통스럽다. 대한민국 보수정권에서 수많은 선량한 국민들이 이승을 떠났다. 참혹(慘酷). 이승만 정권에서 박정희 정권에서, 전두환 정권에서, 김영삼 정권에서, 이명박 정권에서, 박근혜 정권에서, 그리고 최근 윤석열 정권까지 수많은 국민이 참혹(慘酷)하게 이승을 떠났다. 懺悔(참회), 슬프고 비참한 처참(悽慘)한 역사가 거듭되었지만 지금까지 어느 누구 하나 뉘우치는 자가 없다. 慘憺(참담). 이 땅을 떠난 애석한 국민들이 떠나고 싶어 영혼으로 떠난 것도 아니고, 부모형제 친우들이 보내고 싶어 보낸 마음도 아니니 더욱 더 서글픔이 떠나지 않는다. 慘死(참사). 세계 경제 선진국 10위, 군사강국 5위라는 대한민국에서 계엄(戒嚴)이라는 파국적 참혹(慘酷)한 사태로 수많은 인명이 억지 사망하는 사태가 벌어지며 慘史(참사)가 쓰였을 것이다. 논어에 “其言之不?, 則爲之也難(기언지부작 즉위지야란), 자신의 말에 대해 부끄러움을 가지지 않으면, 부끄러움을 실천하기 어렵다”고 했다. ◈羞惡之心 없는 '총통정치' 재현 세월호 참사 때는 구원(救援)이라는 종교단체가 등장했고, 이태원 참사 전후는 주술(呪術)이 끊임없이 등장했다. 예전에도 권력을 영속하기 위한 수단으로 끔찍한 혹세무민(惑世誣民)의 각종 수단이 등장했다. 현대판 수단으로는 합법을 가장한 계엄(戒嚴)이 수차례 등장했다. 계엄(戒嚴)이란, 군인을 동원하는 것으로 ‘이승만·박정희’는 총통정치 수단으로 삼았고, ‘전두환’도 권력이양이라는 포장으로 총통권력을 쥐고 갈려고 했다. 지금 정권은 어떠한가? 탄생 전후부터 안방정치가 등장하며 ‘내가 정권을 잡으면’이라던가, ‘통일 대통령’ 등의 말이 서슴없이 내뱉는 걸 보면서 혹여 또 ‘계엄’이란 수단이 등장하지 않을까 걱정했다. 간곡(懇曲)히 간절(懇切)히 간구(懇求)하오니 羞惡之心(수오지심), 부끄러움을 알자. (참고 : 2022년 11월 노령고蘆嶺鼓 - 慘·慙·懺 '아비규환 절규하는데' https://www.rorynews.com/16207) |
||||
|
||||
| 기사입력: 2025/01/02 [23:32] 최종편집: ⓒ rorynews.com |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