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0월 18일, 학다리중·고등학교 개교 70주년 및 2015년 총 동문 체육대회가 열린 날이다. 전날 오후 나는 한 통의 전화를 받고서 한참을 설레었다. 최이규 교감선생님의 수화기를 통해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분명하고도 또렷했다. ‘어이 서 군수 자네 내일 행사에 참석이 가능하신가?’ 나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안 그래도 한번 들려 볼 요량이었었는데, 교감선생님께서는 내게 명예졸업장을 수여 할 계획을 갖고 있다고 전해 주신 것이다.

 들뜬 기분도 없진 않았지만, 솔직히 망설여지기도 했다. 졸업장에 새겨진 내용을 보고 다시 한 번 놀랍기도 했다. 내가 학교 발전에 기여한 공이 크다고 했고, 사정으로 졸업을 못하게 된 이유를 설명해 놓으셨다. 참 아름다운 배려이시고, 내게는 지금껏 받아 보지 못했던 가슴 벅찬 감동의 선물이자 크나큰 영광이라 아니할 수 없다.

 입학 당시 돌 자갈 밭이었던 뒤편 운동장은 잔디구장으로 말끔하게 정돈 되어있고, 즐비하게 늘어선 텐트 아래에는 기수별 졸업생들이 한창 정담을 나누는 잔들이 부딪히면서 그때 그 시절을 회상하기 바빠 없는 시름도 잊은 듯 했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들이 대다수여서 인사말을 건네기도 영 부자연스러울 수밖에 없었지만 사회자의 소개와 졸업장을 수여 받은 후로는 스스럼없이 대화가 이어지기도 하고 몇 순배의 잔도 기우려 보면서 그 짧은 순간에 반세기에 가까운 시간들이 녹았다.

 얼굴은 윤곽조차도 희미했었는데도 목에 걸린 명찰을 찬찬히 들여다보면서 기억을 되살려 보려고 갖은 애를 써봤지만 한계는 여전했다. 누가 그렇게 만들어 놓은 것도 아니지만, 자신의 불비임에도 무심코 지나 흘러버린 세월이 더 없이 안타까웠다.

 고등학교 동기와 군대 동기는 평생을 간다는데, 불과 몇 개월 사이의 쌓은 교분이 얼마나 두터웠었겠는가마는, 그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시간을 넘어서 시계를 되돌려 준 친구들이 참으로 고맙고 감사했다. 자칫하면 내 속을 다 보여줄 것만 같아 조심스런 마음으로 그 자리를 물러 나왔다. 준비 안 된 내게 쏟아준 정들을 받아내기 힘들어서였다.

 교장선생님실로 인사차 들렸을 때, 노진명 총동문회장님과 양한모 재단이사장님을 뵙게 되었고 동석하신 몇 분의 선배님들께서도 나를 알아보시고 덕담과 조언을 아끼지 않으셨다.

 교장선생님께서 손수 커피를 권하실 때엔 가뭄 끝에 단비랄까, 마치 그런 느낌으로 수학여행 떠나기 전날 같은 기분으로 스스로 우쭐대는 자신이 우습기도 했다.

 한 선배님께서는 내 기고문을 읽으실 때 마다 밑줄까지 그어가면서 보셨다고 하시는데 그 장본인인 나를 만나게 됨은 물론이고, 후배라는 사실에 더 반겨 주셨다. 그래서 얼른 생각에 앞으로는 좀 더 신중을 기해야겠다는 마음을 가다듬었다. 이 순간도 그래야 하는데도 들떠 있는 기분이 그렇게 되게 하질 않는다.

 안병호 군수님의 학교사랑에 대한 구구절절하심과 노진명 총동문회장님의 크고 각별하신 후원, 양한모 이사장님의 학교상황의 이해를 구하심은 김성모 번영회장님의 재정지원과 더불어 아름다우신 사랑의 극치라고 밖에 표현을 달리 할 수 없다.

 구성원 모두가 하나 같이 오직 모교사랑이라는 대명제 아래 뭉쳐 있고, 70의 역사가 그 토대를 배경으로 앞으로 100년을 미래 지향적이면서 함평천지 아닌 ‘함평교육천지’를 말씀하실 때 비록 오늘이 마지막 총 동문 체육대회임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아쉽지마는 않았다.

 이용섭 전 장관님께서는 축사를 통해 ‘수양산 그늘이 강동 팔십 리’ 라고 하시면서, 자신이 산에 오르실 때 까지도 없었던 그 거대한 산맥이 ‘저 출산과 도시 인구 집중’으로 허물어졌다고 하셨다. 그나마 당신께서 ‘홀로 산이셨다’는 말씀에 한국사회에서의 홀로서기의 난해한 것들이 수도 없이 상상되었다.
 학다리중·고등학교가 내후년 안에 학다리 시대를 마감하고 통합거점고로 출발케 되고 현 교지에는 대한민국 최고의 골프명문학교가 들어선다고 한다. 어쩌면 내게는 이제 막 학교 사랑에 첫발을 내 딛는 순간이기도 한데 상황이 반전되는 느낌으로 약간의 혼돈도 온다.

 막걸리와 맥주·소주를 가득가득 정으로 채워 주면서 이제는 정말 동기생이 되었다면서 다음을 같이 하자는 ‘장장순’이와 자신에게도 역할이 있을 거라는 ‘이애란’이의 고맙고 애정 어린 말이 더욱 살가웠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이름의 주인공들이 별로 보이지 않아서 그들이 더 궁금했다.

빛나는 졸업장 보다 더 값지고 그 어떤 것 보다 가치의 소중함을 갖게 해 주는 ‘명예졸업장’을 주신 김갑수 교장선생님께 마음을 다하여 감사를 드리고, 고향 친구 최이규 교감선생님께도 특별히 고마운 마음을 전해드린다.

 학교의 배려에 빚을 진 마음이지만, 그 빚을 갚는 길은 결코 명예를 드높이는 일 보다도 오히려 실추시키지 않도록 노력하겠다는 다짐이다.

 동문 여러분! 오늘자로 25,000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영원히 함께 하겠습니다.

2015년 10월 18일
전 무안군수 서 삼 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