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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사 - 천정배 전 법무부장관
 
천정배 전 장관 ㅣ 기사입력  2014/01/01 [01:50]
 
신 년 사
전 법무부장관 천정배
 
 어릴 적 저는 논에 물이 가득 차 있으면 벼가 잘 자라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논에 물이 항상 차 있으면 오히려 벼가 부실해서 하찮은 태풍에도 잘 넘어진다는 사실을 한참 후에야 할아버지 말씀을 듣고 알았습니다. 가끔은 물을 빼고 논을 비워야 벼가 튼튼해진다는 사실을 말이죠.

 우리도 때로는 삶의 논에 물을 채워야 할 때가 있고, 때로는 물을 비워야 할 때가 있습니다.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채우고 또 비우는 과정의 연속인 것 같습니다.

 저에게 2013년은 그간 채워온 정치를 비우는 첫 해가 되었습니다. 지난 96년 15대 총선을 통해 국회에 들어간 후 16년 동안 달고 다니던 금배지를 처음으로 벗어던지고,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 잠시 휴식기를 가졌습니다.

 정치를 하면서 물심양면으로 도와줬던 지역민들과 조금 더 살 부비고 얘기 나누고 싶어 변호사 사무실을 내며 광주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사무실 한 켠에는 마음을 비워 정신을 가다듬는다는 뜻의 ‘심제(心齋)’라는 글이 새겨진 액자를 걸어 놓았습니다. 십수년간 채운기만 한 마음을 비로소 비우기를 시작한 것입니다.

 나이 60에 고향에 내려와 마주친 사람들은 하나같이 따뜻하고 정겨웠습니다. 여의도에서 치열하게 싸워온 그동안의 정치활동이 덧없이 느껴질 정도로 우리 시민들은 맑고 밝으면서도 배려 깊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매일 불통과 공포의 공안정치로 국민을 힘들게 하는 이 서슬퍼런 시국에서 제가 만약 고향에 내려와 위로받고 있지 않다면, 어떻게 견뎌 냈을지 모르겠습니다.

 돌이켜보면 개인적으로는 사회 곳곳에서 안녕하지 못한 우리 국민들에게 아무 위안과 희망도 주지 못해 죄송한 한해였습니다. 하지만, 밤이 어두울수록 새벽이 가까이 왔다는 말이 있듯이 머지않아 어두운 시국에도 희망의 빛이 비치리라 믿습니다.

 새해에는 더 많이 비워야 새로운 것을 채워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누구나 귀하게 대접받는 세상’을 만드는 ‘정의로운 복지국가’의 꿈이 있습니다. 나라의 정의를 바로 세우고 모두가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는 복지국가를 만들고자 합니다.

 새해에도 묵묵히, 그리고 꿋꿋하게 그 길을 가겠습니다. 우리 지역민들과 함께 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4 갑오년 새해 아침
 
기사입력: 2014/01/01 [01:50]  최종편집: ⓒ ror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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