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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 이제 고향에서 인정받는 사람 되고파
한화갑 전 민주당 대표
 
한화갑 전 민주당 대표 ㅣ 기사입력  2012/01/10 [09:33]
 
  어렸을 때의 기억 중에 뚜렷이 남아있는 것은 일본 제국주의가 망해 가던 제2차 세계대전 말에 순사가 놋그릇을 빼앗아다가 총알을 만드는데 쓴다고 집집마다 뒤지고 다닐 때, 빼앗기지 않으려고 여기 감추고 저기 감추고 하시던 어머님의 모습이 생각난다. 오랜 옛 기억의 한 토막이다.

  나는 1938년 음력 8월 20일(호적 1939년) 전라남도 무안군 흑산면 우이도리에서 태어났다. 지금은 전라남도 신안군 도초면 우이도리이다. 나는 1943년과 1944년 겨울에 소위 시골 서당에서 가히 영리한 아이라는 평을 받았었다. 만 다섯 살과 여섯 살 때 서당을 다녔는데 나보다 다섯 살 여섯 살 많은 사람들도 있었지만 시험 때 마다 거의 장원을 독차지 했었다. 천자문(千字文)을 배우고 학어집(學語集)을 배웠고 계몽편(啓蒙篇)에서 명심보감(明心寶鑑)까지 읽었다. 수십 년 전의 일이지만 지금도 눈을 감고 어렸을 때 외웠던 한문 문장을 술술 외울 수 있다.

  그 때만 해도 일본 말만 사용하던 시대라 조선말로 표시하는 것이 금지되어서 밤에 글을 읽다가 졸음이 오면 훈장선생님은 회초리로 방바닥을 내리치면서 일본말로 훈계를 하곤 했었다. 그 때 서당이 열리는 때는 주로 겨울이었고 밤에만 글공부를 했었기 때문에 낮에는 산에 가서 등걸(나무그루터기)도 베어다 방을 따뜻하게 덥히곤 했었다.

  그런 환경 속에서 자라다 보니 내가 평생 처음으로 배운 것이 짚세기 삼는 법이었다. 또 열 살도 되기 전에 지게를 지고 일을 하기 시작했다. 사람이 자라는 환경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말하고 싶다. 내가 지게지고 일하며 자랄 때는 산에 가다 지게 만들기 좋은 나무를 보면 눈독을 들여 두었다가 저 나무를 베어서 지게를 멋지게 만들어 지고 다니겠다는 다짐을 하곤 했었다. 또 내가 어렸을 때는 시골에서 집집마다 길쌈을 하기 때문에 할머니나 어머님은 겨울만 되면 물레질하고 베틀에 앉아서 베 짜는 것이 일과였다.

  나는 우리 집에서 첫째 아들이기 때문에 어머님이 베틀에 앉으시면 점심으로 고구마 삶는 일은 언제나 나의 몫이었다. 추운 겨울에 찬 물로 고구마를 씻으면 어찌 그리 손이 시립던지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또 따뜻한 부뚜막에 앉아 있는데 어머님이 베틀에 앉으셔서 도투마리(베를 짜기 위해 날실을 감아 놓은 틀) 뒤끼라(뒤집다)고 하시면 일어나기 싫어서 짜증을 냈던 생각이 난다.

  그리고 잊을 수 없는 추억꺼리는 물레질 하던 올 꾸러미를 훔치거나 할머님이나 어머님에게 사정을 해서 몇 꾸러미를 얻어다 다섯 여섯 개의 올을 합쳐서 감아두었다가 양말이나 장갑을 손수 짜서 신고 끼고 다녔던 기억이 난다. 흔히 뜨개질을 여자들이 하는 거라는데 우리 동네에서는 남자들이 뜨개질을 했었고 양말 장갑은 말할 것도 없고 스웨터까지 만들었다. 그래서 나는 하룻밤에 양말을 한 짝 씩 짰었고 지금도 그 때 연마했던 뜨개질 실력은 그대로 남아있다.

  내가 열 살이 되었을 때 아버님이 자식을 교육시켜야 되겠다고 결심하시고 나를 옆에 큰 섬 도초면 수항리 초등학교에 입학을 시켰었다. 그때는 학기가 9월에 시작되었다. 열 살 먹었을 때 숙부님이 하숙집까지 함께 오셨다가 다음날 떠나셨는데 숙부님이 멀어져가자 외로움이 엄습해와 와락 눈물을 쏟았던 촌놈이었다.

  열여섯살 때 목포에 나와서 중학생이 되었다. 지금의 목포 유달중학교다. 나는 목포에 나와서 사과도 배도 처음 먹어보았다. 전깃불도 처음보고, 자동차며, 트럭이며, 기차도 처음 보았다. 큰 트럭이 지나가면 무서워서 골목에 숨었다가 트럭이 지나간 후에 걸어가곤 했었다.

  중학교·고등학교 때는 열심히 공부를 해서 우등생도 되었고, 중학교 때는 대대장이라고 멋진 띠를 두르고 큰 행사 때는 재기도 했었다. 목포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외교학과에 입학했을 때만 해도 나의 목표는 외교관이었다.

  그러나 대학을 다니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나는 대학 때 가정교사를 하면서 고학을 했다. 서울대 학생은 가정교사도 모셔가는 판에 경상도 학부형이 내가 전라도 사람이라고 해서 가정교사를 거절했었다.

  그 때 나는 결심을 했었다. 내 일생을 전라도 차별을 없애는데 바치자. 전라도에서 태어난 후배들이 나처럼 차별받는 일을 없애야 되겠다고 다짐을 했었다. 어떻게 하면 차별을 철폐할 것인가? 좋다. 전라도 사람을 대통령으로 만들어서 좋은 정치하면 된다. 누가 대통령 감이냐 김대중 의원이다. 그렇다면 김대중 의원을 위해서 내 일생을 바치자. 이렇게 작정을 하고 내 발로 김대중 의원 밑으로 들어가서 대통령 만들기를 시작했다. 그래서 성공했다. 내 힘으로 된 것은 아니지만 김대중 대통령은 탄생했고 역사에 길이 남을 대통령이 될 것이다. 나는 김대중 대통령을 만드는 데는 성공했다.

  그러나 내 고향에서 한화갑이가 고향을 위해서는 더 할 수 있었는데 미흡하다는 평을 듣는다. 옳은 말이다. 이제야 한화갑이도 김대중 대통령 만드는 일을 했듯이 고향으로부터 인정받는 진정한 무안·신안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 고향 분들의 많은 이해와 지도편달을 바란다.
 
기사입력: 2012/01/10 [09:33]  최종편집: ⓒ ror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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