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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새뜸 - 함평 "4대강 해갖고 섬을 없애 부렀어"
심홍섭의 남도기행…김옥수 翁 함평군 학교면 월호리 기동마을
 
전남새뜸 기사입력  2011/08/23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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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평군 학교면 월호리 가는 지방도로를 가다가 길이 끊겼는데, 영산강 중천포(中川浦. 사포나루와 고막천 중간지점)였다. 말이 포구지 작은 배 몇 척 묶인 채 떠있을 뿐 뱃길이 열렸던 나루터가 있었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다.

  함평군 학교면 월호리 기동마을. 200여 년 전에 추계추씨(秋溪 秋 氏)가 마을의 터를 잡았고 그 후 나주김씨(羅州金氏)와 이천서씨(利川徐氏)가 들어와 마을을 형성했다.

  옛날 어떤 도사가 마을을 지나다 사방이 조그만 언덕으로 둘러싸고 앞으로 강이 흐르고 있어 마을 터로 아주 좋은 곳이라고 마을이름을 ‘기동(基洞)’이라 했다 한다. 옛날엔 영산강과 접해있는 마을이라 해서 호구총수에는 임강촌(臨江村)이라 기록하고 있다.
▲ 동각에 모여 쉬고 있는 주민들. © 노령신문

  기동마을은 일본사람의 정착이 함평에서 가장 빠른 곳이기도 하다. 일제강점기인 1927년 스기(鈴木) 농장을 운영했던 천야(淺野)라는 일본인이 마을에 집과 창고를 짓고 무안의 땅까지 소작을 주었다. 여기서 나온 이자 쌀이 2000석이나 됐다. 그렇게 모은 쌀을 이곳 창고에 쌓아두고 바로 옆 중천포(中川浦)에서 배를 이용해 목포로 가 다시 일본으로 가져갔다고 한다. 일제 수탈의 중심지였던 셈이다. 지금은 1927년에 지어진 일본식 판잣집과 1930년에 지은 창고가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여기서 보면 영산강이 시원하게 흐른다. 마산(馬山)의 품에 안긴 15가구의 작은 마을이지만 영산강 옆 기름진 평야 당탄들과 진례(進禮)들이 있어 농사짓고 살기 좋은 곳이다. 마산에서 흘러내린 샘이 또 명천이어서 마을사람들은 장수마을이라고 이구동성이다.
▲ 적산가옥과 창고 © 노령신문

▶“도선 일 할 때는 입에 풀칠 할만 했제”

  지금은 비어있는 적산가옥(敵産家屋. 일제(日帝) 때, 우리나라에 있던 일본(日本) 사람의 집) 옆에 사는 김수옥 할아버지(94)를 찾아갔다. 마을에서 가장 연장자인데 귀도 밝고 건강한 모습이다. 몇 가지 물어보니 “뭘 준다는 소리는 안흐고 영감을 귀찮게만 흐네” 하신다.

  “아, 옛날에야 좋았제. 나가 도선 일 흘 때는 사람도 많앴제. 그래서 도선 일도 흘만 했어.”

  할아버지는 40대부터 70세까지 중천포에서 뱃사공으로 일했다고 한다. 강 건너 나주 공산면 사람들이 주로 배를 이용했는데, 나룻배로 도선 일을 할 때는 수익도 그만해서 입에 풀칠하고 살만했단다. 포구 바로 옆에서 주막집도 했는데 1980년 영산강유역 정화사업 때 집을 팔고 지금의 집으로 이사를 왔단다.
▲ 중천포구 © 노령신문

  “아, 어쩔 수 없었제. 정부에서 나가라고 흔께로 나와 부렀어. 배 타는 사람들도 없고 해서. 아, 옛날에야 차가 없응께 배를 탔제만, 지금사 어디 누가 배를 타? 배는 뽈세 없어져 부렀제.”

  할아버지는 적산가옥 이야기도 덧붙인다. “원래는 그 집 창고가 두 개였어. 하나는 뜯어 없어져 부렀제. 나가 10살 묵었을 땐가 지섰는디 굉장했제. 요 인동 논은 죄다 그 사람거였어. 일본사람은 여기서 살들 않앴제. 어쩌다 한번씩 와서 둘러만 보고 가믄 인부들이 쌀을 져다 날라갖고 목포로 가서 일본으로 가져갔제. 사람들이 서로 소작 붙일라고 난리였제. 어찔 것이여. 묵고 살랑께. 그렇게라도 살아아제. 해방 되고 나서는 한번도 안봤구마. 함, 뭘라고 올 것이요. 맞아 죽을라고 올 것이요? 얼마 전에는 군에서 돈을 들애 갖고 수리도 흐고 흡디다.”

  젊었을 적에는 만주까지 가서 포목 장사를 했다는 할아버지는 여전히 기골이 장대하다. “뭘라고 그런 것을 물어싸아. 귀찮구마는”  하면서도 얘기를 줄줄이 풀어놓는다.
김옥수 할아버지 부부 © 노령신문

▶“4대강 사업해 갖고 섬을 없애 부렀어”

  사진 한 장 찍겠다고 하니 손사래를 치면서도 살짝 웃어주시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뒤로하고 마을로 들어갔다. 동각은 마을 앞 영산강에서 불어오는 바람으로 시원하다.

  “영산강이 바로 저긴디 얼매나 시원흐요. 이런 동네 없을 것이요. 저기를 당탄들이라고 흐는디 거기에 당탄섬이 있었어. 땅은 함평에가 있는디 농사짓는 사람들은 나주 공산사람들이었어. 근디 요번 4대강 사업인가 뭔가 해갖고 그 섬을 없애 부렀어. 엊그젠가 일이 끝났을 거이요. 아, 섬 하나 없애는 거 아무것도 아니드만. 영산강 물이 당탄섬에 걸린다고 없애 부렀다요. 오염도 되고 흔께. 아, 나라에서 흐는 일인디 어찌게 흐것소.”
▲ 동가.  © 노령신문

  동각에 앉아있던 할머니들이 조문 가야 한다며 일어선다. 그래서 사진을 찍겠다고 했더니 “얼른 찍으라”며 브이 자까지 그려 보인다. 원래 한마을에서 나고 살았다고 해서 한물댁, 무안 인동에서 시집왔데서 인동댁, 전주이씨라고 해서 전주댁, 무안에서 시집왔데서 무안댁이 카메라 앵글 안에서 웃는다.

  멋진 모자를 쓴 반장 사모님이 대표로 조문을 갈 모양이다. 나에게 부조금 봉투에 이름을 써달란다. 이름을 뭐라 쓸 것인가 물었더니 모두 한물댁, 인동댁, 전주댁으로 써달란다. 무슨 증명이 더 필요하겠는가. 졸필이지만 정성껏 써서 드렸다. 6시가 넘었는데 태양은 작열하고 있다. 그 아래 영산강 바람 맞은 태양초가 잘 익어간다.

/녹색의 땅 전남새뜸(2011년 8월 22일)
/정리=이민행 대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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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1/08/23 [12:35]  최종편집: ⓒ ror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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